후지쓰, AI 반도체 첫 수출…TSMC 위탁생산으로 미국·아시아 공략

무슨 일이 있었나
일본 후지쓰가 인공지능 처리용 첨단 반도체를 내년부터 해외에 판매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후지쓰가 자체 설계한 고성능 반도체를 외부 고객에게 본격적으로 파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판매 대상 시장은 미국과 아시아이며, 칩 제조는 후지쓰 공장이 아니라 대만 TSMC가 맡는다.
이 반도체의 뿌리는 슈퍼컴퓨터 '후가쿠'다. 후가쿠는 후지쓰와 이화학연구소(리켄)가 공동 개발해 2020년대 초 세계 슈퍼컴퓨터 성능 순위 정상에 올랐던 기계로, 당시에도 GPU 없이 자체 설계 CPU만으로 최고 성능을 낸 이례적인 사례로 주목받았다. 후지쓰는 그때 축적한 프로세서 설계 역량을 AI 연산용 상용 제품으로 확장하는 셈이다.
왜 지금인가
후지쓰는 1980~90년대 일본 '히노마루 반도체'를 떠받친 축 중 하나였지만, 2000년대 이후 메모리·파운드리 사업을 차례로 접으며 반도체 제조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그런 회사가 다시 칩을 들고 나오는 배경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 AI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연산 칩 공급이 구조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엔비디아 GPU 물량 확보 경쟁이 길어지면서, 대체 아키텍처나 다른 공급원을 찾으려는 클라우드·연구기관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 둘째, 일본 정부가 라피더스 지원 등 반도체 산업 재건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국가 차원의 판을 다시 깔고 있다. 후지쓰의 수출 시도는 이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설계는 일본, 생산은 대만
주목할 대목은 생산을 TSMC에 맡긴다는 점이다. 한때 자체 팹을 운영했던 후지쓰가 팹리스 모델을 택했다는 뜻이다. 최첨단 공정에서 TSMC와 경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며, 이는 애플·엔비디아·퀄컴이 이미 걸어간 길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구조는 일본 반도체 재건 전략의 한계를 드러낸다. 설계 자산은 일본에 남지만, 가장 부가가치가 큰 선단 공정 생산은 여전히 대만에 의존한다. 라피더스가 2나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실제 고객 물량을 받아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 일본 팹리스 기업의 선택지는 TSMC뿐인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엔비디아와 정면 대결은 아니다
후지쓰의 제품은 GPU가 아니라 Arm 계열 CPU 계보를 잇는다. 대규모 학습(트레이닝)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정면으로 맞붙기보다는, HPC(고성능 컴퓨팅)와 AI 워크로드가 섞인 과학계산·추론 영역을 겨냥할 가능성이 높다. 이 영역에서는 이미 엔비디아의 Grace, 아마존 그래비톤, 암페어 등 Arm 기반 서버 CPU 경쟁이 치열하다.
후지쓰의 차별점은 후가쿠에서 검증된 실제 운영 실적과, 슈퍼컴퓨터용으로 다듬어진 메모리 대역폭 중심 설계 철학이다. 다만 칩 성능만으로 시장이 열리지는 않는다. CUDA에 준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개발자 도구를 얼마나 갖추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한국 산업에 주는 의미
국내 관점에서 볼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메모리다. HPC·AI용 고성능 CPU는 HBM이나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연산 칩 공급자의 등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입장에서 잠재 고객이 늘어나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경쟁 구도다. 한국도 리벨리온·퓨리오사AI 등 AI 반도체 스타트업이 국산 NPU로 데이터센터 시장을 노리고 있다. 후지쓰는 스타트업이 갖기 어려운 대형 시스템 레퍼런스와 정부 프로젝트 실적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非)엔비디아 AI 칩을 둘러싼 아시아 내 경쟁이 한층 복잡해질 수 있다. 결국 관건은 가격도, 스펙도 아닌 '기존 코드가 얼마나 쉽게 돌아가느냐'다.
참고 자료
- 후지쓰, AI 반도체 내년 첫 수출…TSMC가 생산 — biz.chosun.com
- 후지쓰, AI 반도체 美·아시아 공략…TSMC가 생산 —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