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크래프톤의 '포스트 PUBG' 실험, 게임스컴 신작 5종이 말하는 것
2026. 7. 30.
하나의 IP로 10년, 그다음은?
크래프톤은 국내 게임사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매출과 인지도 대부분이 단 하나의 프랜차이즈, 즉 'PUBG: 배틀그라운드'에서 나오는 구조다. 배틀로얄이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킨 성과는 분명하지만, 동시에 이 성과 자체가 회사의 가장 큰 리스크이기도 하다. 한 IP가 흔들리면 회사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래프톤이 매년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게임스컴(Gamescom)에 어떤 신작을 들고 나오는지는 단순한 신작 공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게임스컴은 관람객 규모 기준 세계 최대 게임 전시회로, 여기서 공개되는 라인업은 그 회사가 향후 몇 년간 어디에 돈과 인력을 쓸 것인지를 보여주는 지도에 가깝다.
게임스컴에서 드러난 장르 다각화의 궤적
크래프톤이 게임스컴에 처음 참가하며 내놓은 카드는 서바이벌 호러 '칼리스토 프로토콜'과 테이블톱 기반 전략 게임이었다. 배틀로얄과는 접점이 거의 없는 조합이다. 이 선택 자체가 회사의 방향성을 설명한다. 배틀그라운드의 후속작이나 파생작으로 안전하게 확장하는 대신, 아예 다른 장르에서 새 IP를 만들어보겠다는 접근이다.
이후 공개된 신작들 역시 특정 장르에 몰려 있지 않다. 콘솔 패키지형 싱글플레이 게임, 전략 장르, 서브컬처 지향 타이틀 등 서로 목표 이용자층이 다른 프로젝트들이 병렬로 배치돼 있다. 흔히 말하는 '퍼블리싱 포트폴리오'와는 성격이 다르다. 외부 게임을 사와서 라인업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스튜디오 단위로 독립적인 제작 권한을 주고 여러 장르를 동시에 시험하는 구조에 가깝다.
왜 콘솔·패키지 시장을 두드리는가
한국 게임사 대부분은 모바일과 PC 온라인, 그리고 부분유료화(F2P) 수익 모델에 최적화된 조직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크래프톤이 게임스컴에서 보여온 신작 상당수는 콘솔을 포함한 멀티플랫폼, 그리고 판매형 모델을 염두에 둔 작품들이다.
이 선택에는 명확한 계산이 있다. 첫째, 게임스컴을 찾는 유럽·북미 관람객과 미디어에게 어필하기 쉬운 형태가 패키지형 콘솔 게임이다. 둘째, 배틀그라운드로 확보한 글로벌 인지도를 F2P 라이브 서비스 밖으로 확장하려면 서구권에서 통하는 제작 문법을 익혀야 한다. 셋째, F2P 라이브 서비스는 성공 시 수익이 크지만 운영 부담과 실패 시 손실도 크다. 상대적으로 짧은 개발 사이클과 명확한 손익 구조를 가진 패키지 타이틀은 여러 실험을 병행하기에 적합한 형태다.
성과와 냉정한 평가
다만 이 전략이 이미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출시 초기 기술적 완성도와 게임 디자인을 두고 평가가 갈렸고, 기대만큼의 상업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 회사 실적 발표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새 IP를 만드는 일은 원래 실패율이 높은 사업이며, 한두 번의 시도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건 크래프톤이 그 실패 이후에도 라인업 다각화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임스컴에서 계속해서 성격이 다른 신작을 내놓는 행위는, 단일 프로젝트의 성패보다 '여러 개를 계속 던져서 그중 하나를 크게 키운다'는 포트폴리오 논리를 채택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실제로 다수의 글로벌 퍼블리셔가 신규 IP 확보에 쓰는 방식이 이와 유사하다.
이 실험의 진짜 관문
앞으로 눈여겨볼 지점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하나라도 자립하는 IP가 나오는가다. 화제성이 아니라 후속작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이용자 기반과 수익을 확보하는 게 기준이다. 둘째,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조직이 무엇을 남기는가다. 개발 인력과 기술, 파이프라인이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는지가 장기 경쟁력을 결정한다. 셋째, 배틀그라운드 본체의 안정성이다. 신작 실험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사주는 것은 결국 기존 IP의 현금 창출력이다. 배틀그라운드가 흔들리면 실험의 여유도 함께 줄어든다.
국내 게임업계에 던지는 질문
크래프톤 사례는 한국 게임산업 전체가 마주한 구조적 과제와 겹친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업계는 검증된 IP의 반복 활용과 모바일 F2P 모델에 크게 의존해왔다. 이 모델은 효율적이었지만, 글로벌 콘솔·PC 패키지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국내 개발사가 콘솔 패키지 타이틀과 새 장르에 도전하고 있고, 일부는 해외에서 유의미한 평가를 받았다. 크래프톤이 게임스컴이라는 무대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그 도전을 개별 프로젝트가 아니라 회사 차원의 장기 전략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성공 여부는 몇 년 뒤에야 판가름 나겠지만, 단일 IP 의존이라는 국내 업계의 공통 숙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