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사용후 EV 배터리 ESS 실증…E-GMP 팩의 두 번째 삶

무슨 일이 있었나
현대자동차·기아가 LG에너지솔루션, 현대엔지니어링, 원익피앤이와 함께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기반 UBESS 실증 협력에 나섰다. 9월 10일 열린 기념행사에서 공개된 이 사업은 현대차·기아의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에 탑재됐던 배터리팩을 그대로 가져와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다시 쓰는 방식이다.
UBESS는 'Used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즉 사용후 배터리로 만든 에너지저장장치를 뜻한다. 이번 실증의 핵심 운영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분명하다. 전기 요금이 싼 시간대에 UBESS에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요금이 비싼 시간대에 그 전력을 급속충전기로 흘려보내 전기차를 충전하는 구조다. 현대차·기아는 E-GMP 사용후 배터리팩을 활용한 국내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왜 지금인가
전기차 대중화가 본격화된 시점이 2020년 전후이고, E-GMP 기반 차량이 시장에 풀린 지도 수년이 지났다. 즉, 처음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폐배터리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이제 막 현실 문제가 되는 시기다. 배터리를 분쇄해 리튬·니켈·코발트를 뽑아내는 '재활용(recycling)'만으로는 이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고, 경제성도 원자재 시세에 크게 흔들린다.
반면 재사용(reuse)은 팩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유지한 채 다른 용도로 쓰는 방식이라 해체·정제 비용이 적게 든다. 차량용으로는 수명이 다한 배터리라도 고정형 ESS에서는 충분히 쓸 수 있는 잔존 성능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협력이 완성차(현대차·기아), 셀 제조사(LG에너지솔루션), 엔지니어링(현대엔지니어링), 전력변환·충방전 장비(원익피앤이)로 짜인 것도 배터리 밸류체인 전 구간을 한 번에 검증하려는 구성으로 읽힌다.
무엇이 달라지나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충전 인프라의 경제성이다. 급속충전기는 순간 전력 사용량이 커서 계약전력과 피크 요금 부담이 크다. 여기에 ESS를 붙이면 심야에 미리 저장한 전기로 낮 시간 충전 수요를 감당할 수 있어, 피크 부하와 전기요금을 동시에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력망 증설 없이 충전소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더 중요한 건 잔존가치다. 사용후 배터리에 경제적 수요처가 생기면 그 가치는 결국 중고차 가격과 배터리 교체·보증 비용 구조에 영향을 준다. 다만 이번 발표는 상용화가 아닌 실증 단계이므로, 실제 요금 절감폭이나 보급 규모를 지금 단정하기는 이르다.
경쟁 구도에서 보면
사용후 배터리 ESS 자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해외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들도 수년 전부터 유사한 실증을 진행해 왔다. 이번 건의 차별점은 특정 셀을 모아 재조립한 것이 아니라 E-GMP 팩 단위를 그대로 활용한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서 완성차와 셀 제조사가 함께 표준화된 플랫폼 배터리를 대상으로 검증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기반 배터리팩은 규격이 통일돼 있어 회수·진단·재조립 과정을 표준화하기 쉽다.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사업이 지금까지 확산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차종마다 팩 구조와 관리 시스템이 제각각이라 규모의 경제가 안 나온다는 점이었던 만큼, E-GMP처럼 물량이 큰 단일 플랫폼을 기준으로 삼는 접근은 사업성 측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남은 관건
관건은 세 가지다. 첫째, 사용후 배터리의 잔존 성능을 얼마나 빠르고 저렴하게 진단할 수 있느냐다. 둘째, 안전성 검증과 그에 따르는 인증·규제 체계다. 셋째, 신품 LFP 셀 가격이 계속 내려가는 상황에서 사용후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느냐다. 실증 결과가 이 질문들에 답을 준다면,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국내 사용후 배터리 산업의 기준 모델이 될 여지가 있다.
참고 자료
- 현대차·기아, LG엔솔·원익피앤이와 UBESS 실증 추진 — electimes.com
- 현대차그룹, LG엔솔·원익피앤이와 EV 폐배터리 ESS로 재활용 실증 — yna.co.kr
- "오래된 전기차 배터리에 '두 번째 생애' 선물"…현대차, 사용 후 배터리 ESS 첫 활용 — v.daum.net
-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의 변신…현대차·LG엔솔 등 맞손 — hankyung.com
- 현대차·기아, LG엔솔과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 ESS로 활용 추진 — yna.co.kr